최근 창원에 오가며 공단 바깥 풍경을 보고 있자면, 예전 같은 낡음이 점차 자취를 감추어 감을 느낀다. 2년 전 유남 주유소 맞은편에 스마트 업 타워가 들어섰다. 업체가 빠지고 휑한 부지 몇몇 곳은 하얀 아파트형 공장으로 탈바꿈했다. 이 추세면 낙후된 중소 공장들은 빠르게 정리될 듯하다. ‘낙후된 중소 공장’에 오래 머물던 나로선 묘한 감정이 든다. 대다수 공장이 대기업 하청 생산기지로 전락한 지방에, 다시 한 번 제조업 부흥기가 찾아올까?현장은 지금 ‘최저임금 연동제’CNC 공작기계를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쇠 깎는 기계’다.
줄곧 청년과 지방 문제의 핵심은 일자리라고 주장해왔다. 하여 최근 관심 있게 찾아 본 분야가 있었으니, 바로 광주형 일자리였다. 지방 하청 공장 노동자 입장에선 상당히 합리성 있는 대안으로 보였다. 허나 이번에 광주 글로벌 모터스가 생산한 경형 suv 캐스퍼가 논란 속에서도 불티나게 팔려 나가는 와중. 정작 모체인 광주 글로벌 모터스의 이야기는 의외로 화제가 되지 않았다. 하여 이 제도의 취지나 개요에 대해 얕게나마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우여곡절 끝에 공장 가동2019년 1월 31일. 광주시와 현대차는 신규법인 투자협정서를 체결하며
청년들 사이에서 공정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 그와 함께 오용 당해왔던 능력주의 얘기도 모습을 감추고 있다. 애초에 ‘능력’이라는 단어 자체가 세상의 수많은 변수를 담아내기엔 너무도 작은 그릇. 그저 게임처럼 상대방의 능력치가 눈에 보이는 세계관에서나 통할 법한 신기루일 뿐이다. 그럼에도 타인을 간단하게 규정하고 줄 세우고픈 욕망은 아직 사회 곳곳에 퍼져 있다. 계층과 계급을 나누려 하는 이 일련의 시도들은 청년들의 노동담론에 이미 깊숙하게 침투했다. 그 부작용은 현재진행형이다. 명문대가 아닌 이들의 이야기를 웃음거리로 만들었고,
좋은 일자리가 뭘까? 나는 그간 온갖 청년 문제의 핵심 해결책이 일자리 문제라 주장해왔다. 지역, 주거, 취업, 공정, 학자금, 젠더 갈등, 미래 불안, 온갖 고충들이 좋은 일자리가 없어 나온 문제라고 보았다. 근데 막상 청년 정책을 조언해야 할 상황이 오니 그 ‘좋은 일자리’의 이미지가 쉬이 떠오르질 않았다. 조건이야 금방 생각난다. 돈 많이 주는 데다 퇴근 시간 보장하고, 사내 복지 좋으며 상사 갑질 없고 근속 길게 가져갈 수 있는 직장. 이렇게 요소만 나열하고 보면 결국 좋은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대기업에 일자리 나눠 달
중앙일보에서 2030 필자가 기성세대 인물 저격하는 컨텐츠를 시작하겠다고 한다. SNS에서나, 아니 SNS에서조차 되도록 지양해야 할 ‘저격질’에 중앙지가 판을 깔아준 꼴이다. 취지도 괴상망측하다. ‘저격은 구세대가 생물학적 나이를 내세워 2030의 간판만 소비하는 뻔한 글쓰기가 아닙니다. 대신 2030 눈높이에 맞지 않는 비상식적 정책, 또는 구태·구습을 옹호하는 구세대 기득권층을 정면으로 저격하며 주도적으로 목소리를 낼 예정입니다’라고 한다. 이게 얼마나 세상에 도움 안 되는 기획인지 한 번 짚어보려고 한다.개인사에 세대론을 끌
유발 하라리의 호모데우스 마지막 장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와의 냉전에서 승리한 이유를 풀어놓는다. 기술 변화가 가속화 되는 시대엔, 중앙 집중식 데이터 처리보다 분산식 데이터 처리가 더 효율적이었다는 것. 공산주의는 모든 정보가 한 곳으로 축적되면서부터 도태되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연산력과 데이터 처리 기술의 발달로 인해, 다시금 중앙 집중식 독재가 더 효율적인 시대가 왔다. 수많은 정보의 처리 주체가 집단지성에서 알고리즘으로 옮겨간 것이다. 하라리는 인공지능·빅데이터가 파시즘을 되살릴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를 했다. 굵은 책을
최근 풍채만큼 큰 꿈을 꾸시는 분께서 52시간제가 실패한 정책이라 비판했다. 그 정도까지만 하면 괜찮았을 것을, 굳이 주 120시간 운운하다가 비웃음거리가 되었다. 다만 비판의 골자는 한 번 재고해봄직했다. 실제로 내가 머무는 제조업 현장도 52시간제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당장 급여 명세서에 찍히는 액수가 다른데 체감이 안 올 리 있겠는가. 그렇다고 OECD 연간 노동시간 2위의 늪에 영영 빠져있을 수도 없는 노릇. 대체 이 단순하지 않은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50인 미만 중소기업에 52시간제가 적용된 지 어느덧
서울대학교 청소 노동자가 돌아가셨다. 이번이 두 번째다. 많은 사람이 분개하며 이를 가는 와중에, 학생처장이라는 분은 자기 책임을 ‘외부 정치 세력’, ‘흑백 진영논리’로 얼버무린다. 기획 시설부 관장이라는 분도 ‘마녀사냥’, ‘갑질 프레임’ 운운하며 노동자의 무덤에 침을 뱉는다. 이분들은 ‘일하다 죽는다’라는 상황 자체에 공감할 수 없어 보였다. 화가 나기보단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배 위에서 살아가던 이들이 배 아래에서 사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는 게 대한민국 사회 구조다.배 위의 삶한국 사회라는 커다란
‘KBS 세대인식 집중조사’의 결과로 시끄럽다. 몇몇은 20대 남성들의 보수 성향에 놀라 다시금 ‘이대남 일베화론’을 꺼내 들었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려 빈약한 근거도 붙인다. ‘20대는 원래 이렇다.’, ‘책상에서 공부만 해서 그렇다’, ‘페미니즘/안티 페미니즘의 영향을 받았다.’, ‘MB시절 국정원의 대규모 심리조작 결과다’, 근원을 생각하지 않고 현상과 숫자로만 비판하니 헛발질만 해댄다. 이런 식의 일반화는 혐오만 더 부추길 뿐이다. 이참에 나이와 성별로만 구분 짓지 말고 그들의 현실을 향해 돋보기 좀 살짝 들이밀어 보자.
신세계 부회장이 자기 SNS로 거하게 일베 인증을 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 음식 사진마다 연일 ‘미안하다 고맙다’라는 내용을 썼다. 여러 네티즌이 세월호 유족 조롱처럼 보일 수 있다며 문제를 지적했지만 관둘 생각이 없었다. 오히려 ‘sorry and thank you’, ‘OOOO. OOO.’ 같은 문구로 노골적으로 빈정대더니. 끝끝내 자기 반려견 추모글까지 그 조롱을 끌고 왔다. 네티즌이 뭐라건, 오너 리스크가 어쨌건, 언론에서 어떻게 떠들건 간에 내 할 말은 해야겠다는 의지가 느껴졌다. 구태여 지면으로 그 자의식의 비대
노동자가 최우선인 기업, 노동자가 소모품인 기업2016년 5월 28일은 구의역 김군의 죽음이 있었던 날이다. 서울 메트로 하청업체 직원이 스크린도어 수리 중 사망한 사건은 전에도 두 번 있었다. 이 문제가 유독 크게 언론을 탄 이유는 김군의 안타까운 사연 때문이었다. 만 스무 살을 하루 앞둔 생일에 난 참변. 가방에서 나온 포장 뜯긴 육개장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김군이 부주의했다며 책임을 면피하려던 서울 메트로의 후속대처까지. 필자 역시 같은 현장 노동자로서 연민과 분노 때문에 피 나도록 입술 씹어가며 추도문을 썼던 기억이 난다.2
“같은 민족이라도 대한민국 정부 장관에 북한 사람이 자리하는 건 말이 안 된다.”눈을 의심했다. 정합성도 맞지 않는, 인권의식조차 없는 저 비유를, 고려대 학생이 했다고? 아니나 다를까. 세종캠퍼스 소속 학생이 총학생회 임원으로 인준받자, 다수 고려대 학생이 학교 홈페이지에 비난 글을 올렸단다. “분캠에 입학하는 것만으로 본캠의 위상을 그대로 이용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연결 고리 자체를 끊어내야 한다.”라며 대놓고 우월의식을 드러내는 이도 있었다. ‘그래도 명문대생이 전문대 나온 나보단 현명하겠지’라는 생각이 산산이 부서지는 순간